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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9-20 11:17
[예화] 예화 1
 글쓴이 : 한나
조회 : 7,260  
첫번째 이야기
어머니의 기다림
홀어머니를 버리고 집을 나갔던 아들이 어느 날 자신의 불효를 깨닫고 먼 길을 걸어 깊은 밤 집에 돌아왔습니다. 집 앞에 도착하니 대문은 열려있고 방에는 불이 켜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서는 어머니가 편히 눕지도 않은 채 졸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앞에 무릎을 꿇은 아들이 그 까닭을 여쭙자 어머니는 아들이 집을 나간 후 내내 그렇게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혹 아들이 돌아왔다가 불이 꺼져 있으면 다시 나갈까 염려가 되어 그렇게 하셨다며 아들을 꼭 껴안았습니다.
자녀이신 여러분, 주 안에서 여러분의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옳은 일입니다. “네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은 약속이 딸려 있는 첫째 계명입니다.                         
(에베소서 6:1-2)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어머님 은혜라는 동요의 첫 구절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친구들과 잘 놀다가도 아프거나 두려운 일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엄마”하고 부르게 됩니다. 그만큼 어머니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한 안식처이자 피난처입니다. 혹 어머니께 투정을 부려 마음을 아프게 한 적은 없습니까? 하나님은 가끔 어머니를 통해서 사랑을 나눠주시기도 하신답니다. 부모님을 공경하세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약속있는 첫번째 계명입니다.

두번째 이야기
          두 천사의 이야기
하나님이 인간의 기도를 모으려고 이 땅에 두 천사를 내려 보냈습니다. 한 천사는 그의 바구니에 사람들의 소원 기도를, 다른 천사는 감사 기도를 모으려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그들이 하나님의 나라로 되돌아 왔습니다. 한 천사는 바구니가 넘칠 정도로 인간들의 수 많은 소원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감사 기도를 담아 오겠다는 천사의 바구니는 거의 비어 있었고, 그 천사는 슬프고 무거운 마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언제나 우리를 참가시키고, 어디에서나 우리로 그리스도를 알리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고린도후서 2:14)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나는 키가 작은데, 나는 공부를 못하는데, 나는...,이외에도 많은 불만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요? 난 공부는 못하지만 운동을 잘하니까 감사합니다. 난 키는 작지만 건강하니까 감사합니다. 우리 주변에는 잘 둘러보면 감사할 조건이 생각 외로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세번째 이야기
          아영이와 사촌동생
아영이는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오는 중에 길을 잃어 가게 앞에서 쪼그려 앉아 울고 있는 꼬마를 만났습니다. 도와줄까 생각하다 딴 사람들처럼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아영이는 오후 내내 그 꼬마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습니다. 아직도 울고 있지는 않을까, 아니면 나쁜 아저씨들에게 잡혀 가지는 않았을까 별 생각이 다 들었습니다. 그 때 엄마가 그 꼬마의 손을 잡고 들어 오셨습니다. “아영아, 시골에 사는 네 사촌 동생이야. 집을 못 찾아 울고 있는 걸 오다가 만났지 뭐니.” 아영이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드의 사람이라고 해서, 그 이름으로 너희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사람은, 절대로 자기가 받을 상을 잃지 않을 것이다.      (마가복음 9:41)

살아가면서 우리는 뜻하지 않던 어려움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우린 그럴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됩니다. 그것은 주위의 도움을 받기 위함일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는 동안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살 수 있을만큼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주위에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지 손을 내밀어 힘이 되어 주세요. 우리들의 맞잡은 손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듭니다.

네번째 이야기
            소녀와 강아지
강아지를 파는 가게에 한 어린 소녀가 찾아와서 강아지의 값을 물었습니다. 그 소녀가 가리킨 강아지는 다리를 저는 강아지였습니다. 가게 주인은 이상하다는듯이 “왜 하필이면 다리를 저는 개를 사려고 하니?” “저도 다리를 다친 절름발이거든요. 이 강아지에게는 많은 사랑과 도움이 필요할 거예요. 저 역시 많은 도움과 사랑을 받았지요. 불구의 몸으로 자라는 것이 보통 힘드는 것이 아니거든요.” 주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 개를 그 소녀에게 그저 주었습니다. 그 소녀가 그 강아지를 가장 잘 보살펴 줄 주인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때에 임금이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자매 가운데, 지극히 보잘 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다.’            (마태복음 25:40)

예수님께서는 장님의 눈을 뜨게 하시고 앉은뱅이의 다리를 고치셔서 걷게 하셨습니다. 이는 그들과 같은 형제요, 우리와 다를 바 전혀 없는 이웃임을 보이시기 위함이기도 합니다. 장애자들에게는 작은 관심도 큰 힘이 됩니다. 그렇다고 과잉 친절을 베풀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장애자들은 단지 조금 불편한 것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거나 외면한다면 그들에게는 아주 힘든 형벌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애정어린 관심으로 함께 친구가 되어야겠습니다.

다섯번째 이야기
            장미의 가시
꽃 중의 꽃이라고 늘 뽐내던 장미가 어느 날 하나님께 불평을 털어 놓았습니다. “하나님, 저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만드셨으면서 왜 볼품없고 따가운 가시를 주셔서 벌이나 나비가 절 멀리하게 하셨습니까? 부디 가시를 없애주세요.” 하나님은 아무 말없이 장미의 소원을 들어주셨습니다. 장미는 너무나 기뻐서 한껏 우쭐대며 나비가 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 때 저 멀리서 염소가 자기를 뜯어 먹으러 오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장미는 그때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장미에게 다시 가시를 달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조심하여, 온갖 탐욕을 멀리하여라. 재산이 차고 넘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거기에 달려 있지 않다.”(누가복음 12:15)

장미의 잘못은 무엇일까요? 장미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꽃이면서도 자신의 모습에 만족할 줄 몰랐습니다. 사람의 욕심도 이 장미처럼 끝이 없습니다. 친구의 가방이 더 좋아 보이고, 다른 사람이 입고 있는 옷이 더 고급스러워 보입니다. 사실 옷이나 돈, 명예 따위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닙니다. 지금의 우리들 모습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최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만 주시려고 하지만 우리의 욕심이 그것을 지나칠 때 벌하십니다. 무엇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디에다 그것을 사용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여섯번째 이야기
          어리석은 호랑이
깊은 숲 속에 무서운 호랑이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호랑이는 발톱이 날카롭고 포악하여 숲 속 동물들을 괴롭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숲 속 동물들이 모여 어떡하면 호랑이를 쫓아 낼 수 있을까 궁리를 하던 중 여우가 꾀를 냈습니다. 다음날부터 동물들은 호랑이굴 앞에 하루에 한 번씩 먹을 것을 갖다 놓았습니다.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먹을 것이 생긴 호랑이는 매일 굴 앞에 놓이는 먹이만 기다리며 흐뭇해 했습니다.
여러 날이 지난 후 놀고 먹기만하던 호랑이가 발톱도 무뎌지고 빨리 달릴 수도 없게 되자 숲 속의 동물들은 힘을 모아 호랑이를 쫓아 내 버렸습니다.(95.2.19.주.낮)
손이 게으른 사람은 가난하게 되고 손이 부지런한 사람은 부유하게 된다.(잠언 10:4)

호랑이가 제 힘으로 사냥을 다닐 때는 다른 동물들이 그 모습만 봐도 도망가기에 바빴지만, 사냥하지 않고 다른 동물들이 가져다 주는 먹이에 만족하며 게으름을 피울 때에는 무서워 하기는 커녕 힘을 모아 쫓아 내어 버렸습니다. 일하지 않고 무엇을 얻고자 하는 것은 죄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들에게 수확을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려야 한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의 일하는 손, 땀 흘리는 모습을 가장 이뻐하십니다. 일하는 사람이 부유하게 되는 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입니다.

일곱번째 이야기
      어미 독수리, 아들 독수리
아들 독수리가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맛있는 먹이를 발견했습니다. 며칠 동안 먹이를 구하지 못했던 까닭에 배가 고팠던 아들 독수리는 먹이를 먹으려다 집에 계시는 어미 독수리 생각이 났습니다. “엄마와 나눠먹을까? 아냐, 혼자 먹기도 부족하니 엄마는 엄마가 직접 잡아 먹으라고 하지 뭐.” 먹이를 다 먹은 아들 독수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집으로 갔습니다. “얘야, 엄마가 먹이를 잡았는데 너와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단다. 어서 먹자꾸나.” 아들 독수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습니다.
자녀가 되신 여러분, 모든 일에 부모에게 복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입니다.  (골로세서 3:20)

사랑은 흔히 내리 사랑이라고들 합니다. 우리들은 부모님께 늘 받기만을 원할 뿐 무언가를 해 드린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부모님들은 좋은 것이 있으면 우선 자식들 생각을 하지만 자식들은 자기의 욕심만 채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어버이날에 부모님께 꽃 한송이 달아 드릴 때면 조금 죄송한 마음이 앞섭니다. 부모님께선 늘 우리에게 주실 것만을 생각하십니다. 부모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부모님께선 우리의 그러한 모습에 무척 기뻐하실겁니다.

여덟번째 이야기
            눈사람의 희망
겨울이 끝날 즈음 고드름은 무척 슬퍼졌습니다. 곧 따뜻한 봄이 되면 녹아 버릴 테니까요. 그런데 곁에 있는 눈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웃고만 있었습니다. 고드름은 이상하다는 듯이 “넌 녹아서 네 몸이 사라지는 것이 두렵지 않니?” 눈사람은 빙그레 웃으며 “난 녹아서 물이 되어 산과 들에 생기를 불어 넣고 꽃들을 잠에서 깨울테야. 그리고 계속 노력해서 바다로 가려고 해, 바다는 우리의 고향이거든, 그것이 뭐가 두렵겠니?” 그 이후로도 겨울만 되면 고드름은 걱정으로 얼굴을 찌푸리고 지내서 몸이 야위었고, 눈사람은 희망으로 늘 웃고 지내는 덕택에 살진 모습이 되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를 사랑하시고 은혜가운데서 영원한 위로와 선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서, 친히, 여러분의 마음을 격려하시고,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세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데살로니가후서 2:16-17)

고드름과 눈사람은 똑 같은 상황인데도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기쁨과 슬픔이 갈렸습니다. 하나님께선 우리에게 어려움 속에서도 이겨낼 수 있도록 소망이라는 걸 주셨습니다. 소망이 있는 삶은 늘 기쁘고 아름다울 수 있지만 소망이 없는 삶은 어두운 밤길을 등불도 없이 걸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소망으로 인해 십자가의 고난도 마다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소망을 가집시다. 우리의 소망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 줄 수 있는 소망이어야 더욱 아름다울 것입니다.

아홉번째 이야기
            돼지와 암소
어느 날 돼지가 암소에게 자기가 얼마나 인기가 없는가 하고 한탄 하였습니다. “너는 우유와 크림을 준다. 그러나 나는 더욱 많이 준다. 나는 베이컨과 햄을 주고 털을 주고 그들은 심지어 내 발을 소금에 절이기도 한다. 그런데도 아무도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단지 돼지일뿐이다. 왜 사람들은 너만 좋아하고 나는 좋아하지 않는걸까?” 암소는 잠시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글쎄, 아마 나는 살아 있는 동안에도 주기 때문일꺼야.”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부유해지고, 남에게 마실 물을 주면, 자신도 갈증을 면한다.  (잠언 11:25)

우리 주변에는 우리보다 더 어려운 이웃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 거리를 걷다가 부랑아나 구걸하는 걸인들을 본 적은 없습니까? 내 형제, 내 친구만 도울 줄 알고 그들을 못본 척 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 않는답니다. 또 내가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다음에 많이 가질때 그들에게 나누어 주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행하기를 원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가진 것에서 조금씩 나눕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반드시 채워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우리가 됩시다.

열번째 이야기
        특별히 준비된 자리
잔치집 대문을 열고 두 명의 손님이 들어왔습니다. 한 사람은 고급차를 타고 왔고 옷도 근사했는데, 또 한 사람은 반대로 남루한 모습이었습니다. 첫번째 손님은 상석에 앉아 거드럼을 피웠고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그와 사귀려 했지만 두번째 손님은 끝자리에 앉아 조용히 잔치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잠시후 주인이 나와서는 첫번째 손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손님, 이 자리는 저기 계신 손님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자리이니 비켜 주시겠습니까?” 주인이 가리킨 곳에는 남루한 차림의 두번째 손님이 앉아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질 것이요,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누가복음 14:11)

우리는 누구나 높아지려고 노력합니다. 그리고 그렇지 못한 자라 할지라도 높은 것처럼 보이려고 치장도 하고 거짓을 말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진정 높아진다는 것은 가장 낮아짐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도 씻으셨습니다. 그 누가 그런 예수님을 낮은 자라 말하겠습니까? 권세있는 자의 높은 위치가, 가진 자들의 보화가 그 사람을 높이는 것이 아닙니다. 팔을 걷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들을 찾아 묵묵히 행하십시요. 어려운 이웃을 도와주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주십시오. 그 길만이 진정 하나님 안에서 높아지는 길입니다.



열 한번째 이야기
              샛별과 혜성
샛별과 혜성 둘이서 세상 구경을 다니다가 어느 산 속에 소녀 하나가 길을 잃고 헤매는 것을 보았습니다. 샛별은 그 소녀의 길을 안내해 주기 위해 땅 가까이 내려와서 소녀를 집에까지 바래다 주었고 혜성은 못본 척 하늘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 사실을 안 하나님은 샛별과 혜성을 불러 샛별에게는 밝은 빛을 선물로 주셔서 세상 많은 사람들의 좋은 길동무가 되게 하셨고, 혜성에게는 길 잃은 소녀를 외면한 벌로 평생동안 밤 하늘을 떠돌아 다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온갖 은혜를 넘치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여러분이 쓸 것을 언제나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서,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8)

누구나 어려운 일을 당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에게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외면한다면 하나님은 우리를 외면 하실겁니다. 착한 일이라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바로 나의 일인 것처럼 여기고 나서서 도와 주는 것입니다. 머리가 둘 달린 아기는 한쪽 머리가 아플때 다른쪽 머리도 아파하면 한 사람이고, 그렇지 않고 웃고 있으면 서로 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아파할 때 함께 아파할 수 있는 한 몸이 되어야겠습니다. 우린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한 형제요, 한 자매니까요.

열 두번째 이야기
        초대 받지 못한 예수님
은주는 자기 생일을 맞아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 하였습니다. 친구들은 제각기 값진 선물을 들고 와서 생일 잔치에 참가했는데 우성이는 빈 손으로 와서 문밖에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두드렸습니다. 은주는 우성이의 남루한 옷차림과 선물이 없는 걸 보고는 “난 널 초대 한적이 없어, 미안하지만 나가주겠니?”라고 말하며 문을 닫아 버렸습니다. 우성이는 무척 슬퍼졌습니다. 그런데 문 밖에는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들어가지 못하고 울고 있는 친구가 한 명 더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예수님이셨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한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그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야고보서 2:8-9)

우리는 가끔 외모나 옷차림으로 상대방을 평가하는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속이 지저분한 금그릇이나 은그릇보다는 투박하지만 속이 깨끗한 질그릇을 더욱 귀히 쓰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외모가 아닌 그 사람의 속 마음을 보고 하늘 나라 문을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외모를 보고 이웃을 쫓아 내면 예수님을 쫓아 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쫓아낼 수야 없지 않습니까?

열 세번째 이야기
              감사할 조건
진수는 화가 단단히 났습니다. 예배를 드리려고 주일학교실에 들어가면서 신발장에 벗어둔 신발이 어느 새 없어진 것입니다. 예배가 끝나고 찬양을 배우는 시간 내내 화가 풀리지 않아 찬양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 때 앞에 앉아서 찬양을 드리는 친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친구는 어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 쪽 다리가 없는 장애인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찬양을 드리는 그 친구의 얼굴에는 기쁨이 넘쳤습니다. 신발이 아니라 두 다리 모두 잃어도 감사할 조건을 찾아 하나님께 찬양드리는 그 친구를 보며 진수는 무척 부끄러워 졌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6-18)

진수는 신을 잃어 버렸을 때 화가 났지만, 그 친구는 한쪽 다리를 잃고도 기쁨으로 찬양 드릴 수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을까요? 우리가 살아가면서 많은 일들에 부딪히게 되는데 그 일들의 대부분이 우리의 감정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될 수도, 낙심의 조건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습니다. 들에 핀 꽃 한송이에도 감사함을 느낄 수 있다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 드릴 수 있을 겁니다. 범사에 감사하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찬양으로 돌려 드리세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받으실 겁니다.

열 네번째 이야기
            게으른 수탉
새벽마다 수탉은 지붕 높은 곳에 올라 목청 높여 우는 것으로 아침이 오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괜히 심술이 났습니다. “도데체 사람들은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모르는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저 소나 돼지에게는 좋은 음식을 먹여 주면서, 난 스스로 먹이를 구하도록 내버려 두겠어? 좋아! 내일부터는 아침이 와도 알려 주지 않을거야. 그러면 나의 소중함을 알겠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다 되었는데도 수탉은 닭장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늦게 일어난 농부는 닭장에 있는 수탉을 보고 화가 나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젠 이 닭도 쓸모가 없게 되었으니 저녁에 돌아와서 잡아 먹어야겠다.”
부지런한 사람의 손은 남을 다스리지만, 게으른 사람은 남의 부림을 받는다.(잠언 12:24)

우린 가끔 나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고 또 나 아니고는 아무도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천지만물중 가장 귀하게 만드셨지만 게으르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면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이 수탉도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주인에게 잡혀 먹히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키워가야 되겠습니다. 언젠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잘했다”칭찬 받을 수 있도록 말입니다.

열 다섯번째 이야기
            둘 다 옳은거야
나무는 언제나 바람으로부터 세상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소식을 전했습니다. “세상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야. 나무마다 온갖 열매가 열리고 사람들은 풍성한 곡식을 거둘 수가 있어서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지.” 그 때 북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이야기를 가로 막으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냐, 세상은 매우 춥고 온통 얼음으로 뒤덮힌 삭막한 곳이야.” 남풍과 북풍은 서로 자기의 주장이 옳다고 주장하며 다투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던 나무가 이야기 했습니다. “너흰 둘 다 옳은거야, 너흰 서로의 고향 외에는 가보지 않아서 상대방의 말을 믿지 않을 뿐이지.”
그대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기를 힘쓰십시오. (디모데후서 2:15)

진리란 무엇일까요? 내가 본 것, 내가 들은 것은 옳은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걸리버 여행기를 보면 걸리버는 소인국에도, 거인국에도 가게 됩니다. 그 곳에서 걸리버는 자신의 몸에 아무런 변화가 없었지만 소인국에서는 너무 크다고, 또 거인국에서는 너무 작다고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우린 가끔 자기의 주장과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들과 다투곤 합니다. 이 세상에 절대 진리란 성경 말씀 외에는 없습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친구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고 자신의 의견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어야 되겠습니다. 성경 말씀에 기초한 의견 교환은 우리의 사고를 한단계 성숙시킬 것입니다.

열 여섯번째 이야기
                친구
효상이가 서울로 이사온 지 열흘이 지났습니다. 낯선 집, 낯선 학교 이 모든 것에 적응하기가 힘이 들었지만 무엇보다 힘이 든 것은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 오늘부터 친구를 찾아 나서야겠어. 이 곳에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내 친구가 되어 줄 사람도 많을거야.” 효상이는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친구가 되어 주겠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효상이는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다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는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민혁아, 내일부터는 친구를 찾아다니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친구가 되어 주려고 노력해 보려무나. 그러면 네가 가는 곳 어디서나 친구를 만날 수 있을거다.”
너의 친구나 너의 아버지의 친구를 저버리지 말아라. 네가 어렵다고 친척의 집을 찾아 다니지 말아라. 가까운 이웃이 먼 친척보다 낫다. (잠언 27:10)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중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중요합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첫째는 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진정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알려줍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우리의 마음가짐과 행동에 따라 친구도 될 수 있고 원수도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친구는 우리가 가만히 기다리면 저절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희생과 사랑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친구를 사귀고 싶습니까? 누구에게나 스스로 친구가 되어 주십시요.

열 일곱번째 이야기
          바다, 그 생명력
호수와 바다는 작은 언덕을 사이에 두고 이웃하여 살았습니다. 바다는 매일 바위에 몸을 부딪히고 쉬지 않고 소금을 자신의 몸에 뿌렸습니다. 호수는 그런 바다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호수는 바람과 이야기하고 나무와 놀기만을 즐겼습니다. 수 년이 지난 후 호수는 제 몸 어느 구석부터 물이 썩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아픔을 느끼면서도 바위에 내 몸을 부딪히는 것은 잠들지 않기 위함이고 소금을 뿌리는 수고를 하는 것 역시 내 몸을 썩히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어.” 슬픔에 빠진 호수를 향해 바다가 한 이야기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이시며,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그분의 영원한 영광으로 불러들이신 분께서, 잠시동안 고난을 받은 여러분을 친히 온전하게 하시고, 굳게 세워 주시고, 강하게 하시고, 기초를 튼튼하게 해주실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10)

우리 주위에는 착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데도 늘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이 종종 있습니다. 또한 남의 것을 탐하고 게으른 생활을 하면서도 잘 사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그 속에서 우린 이 세상이 참 불공평하다고 생각하곤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다. 선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잠시입니다. 그 고난과 시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릴 더욱 온전하게 해주신다고 성경은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그 만큼 우리게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열 여덟번째 이야기
          소녀와 호랑이
산골 마을 소녀가 산나물을 광주리에 하나 가득 담아서 산을 내려오는 길이었습니다.
큰 바위를 막 넘으려는데 바위 틈새에 아기호랑이 몇 마리가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소녀는 아기호랑이가 너무 이뻐서 머리도 쓰다듬어 주고 안아 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저 앞에서 어미호랑이가 나타났습니다. 깜짝 놀란 소녀는 나물 바구니도 버려둔 채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호랑이가 집에까지 따라왔습니다. 소녀는 너무 겁이 나서 그만 주저 앉아버리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호랑이는 입에 물고 온 나물 바구니만 내려 놓고 가만히 사라졌습니다.
어머니가 어찌 제 젖먹이를 잊겠으며, 제 태에서 낳은 아들을 어찌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하여도, 나는 절대로 너를 잊지 않겠다.                          (이사야 49:15)

호랑이도 자기 새끼를 귀여워 해 주는 사람은 물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록 하찮은 동물이라 할지라도 모성애라는 것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습니까?
가끔 혼을 낼 때에도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에 혼을 내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머니가 자식을 잊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잊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말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우릴 잊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때도 하나님께서는 우릴 사랑하실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은 아프실 겁니다.

열 아홉번째 이야기
              동업자
가구를 만들어 파는 가게에 한 손님이 들어 왔습니다. 그 가게의 가구들은 모두가 튼튼하고 멋지게 보였습니다. 손님은 가게 한 켠에서 열심히 대패질을 하고 있는 목수에게 “여기 일하는 사람이 모두 몇입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둘이요”라고 목수가 대답했습니다. 손님은 다른 사람이 또 있나 둘러 보았습니다.목수는 웃으며 “하나님과 내가 여기서 일하지요. 하나님은 나무를 만드시고, 나는 침대를 만들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네가 하는 일을 주께 맡기면, 계획하는 일이 이루어질 것이다. (잠언 16:3)

우리가 학교를 졸업하고, 상을 받고, 공부를 하는 것들이 오직 우리가 잘 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잠시라도 관여해 주시지 않으면 쓰러지고 마는 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강해질 수 있는 것은 오직 내 주위에서 나를 지켜 보호하시는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린 하나 잘했다고 해서 너무 자랑하거나 잘못된 일이 있다고 해서 너무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시는 이도 하나님이시요, 거두어 가시는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 온전히 하나님께 맡겨보십시오. 이루어 주실 겁니다.

스무번째 이야기
                민들레
햇볕이 잘 드는 앞마당 화단에 장미가 피었습니다. 보람이는 장미가 너무 좋아 자주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 옆에 수줍게 핀 민들레는 장미에 가려 보람이의 눈에 잘 띄지 않아서 물을 조금 밖에 얻어 먹을 수 없었고, 벌레의 괴롭힘도 이겨내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방학을 맞아 보람이가 시골 외갓댁에 내려가는 바람에 아무도 화단에 물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비도 내리질 않아 꽃들은 목이 탔습니다. 방학이 끝날 때 쯤 보람이가 집에 돌아와보니 장미는 이미 시들어 버렸지만, 민들레는 참고 이기어 끝끝내 홀씨를 틔웠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위하여 당하는 나의 환난을 보고, 낙심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내가 당하는 환난은 여러분에게는 영광이 됩니다.(에베소서 3:13)

만일 보람이가 민들레에게도 물을 주고 벌레도 잡아 주어 민들레가 아무런 수고도 없이 꽃을 피울 수 있었다면 방학 기간동안 민들레가 살아 남을 수 있었을까요? 아닐겁니다. 우리가 고난이라고 여기는 것 중 대부분은 이처럼 우리를 단련시키려는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고난으로 단련된 사람만이 어려운 일에 부딪칠 때 그 일을 슬기롭게 이겨낼 수가 있는 겁니다. 어른이 다 되어서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엄마’하며 숨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온실 속에서 자란 꽃이 오래가지 못하듯이 고난을 겪어 보지 못한 사람은 세상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스물 한번째 이야기
        토끼가 구해온 것은
토끼와 여우와 원숭이는 평소 자신들을 보살펴 주던 주인 아저씨가 다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셋이서 먹을 것을 구해 오기로 했습니다.먼저 원숭이는 나무에 올라가 머루랑 사과를 따왔고 여우는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왔습니다.하지만 토끼는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금방 먹을 것을 구해 올테니 솥을 걸고 불을 피워 두렴.”토끼는 이 말을 하곤 숲 속으로 들어가서는 물이 끓을 때가 되어서야 돌아왔는데 손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무얼 가지고 온거니? 어서 내 놓아 봐.”
바로 그 때 토끼가 솥으로 뛰어 들었습니다.자신의 몸을 주려고 한 토끼의 마음을 아신 하나님은 소나기를 내려 불을 꺼 주셨습니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아라! 그 아이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아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도 나에게 아끼지 아니하니, 네가 하나님 두려워하는 줄을 내가 이제 알았다. (창세기 22:12)

이 이야기는 우리가 충성해야 할 대상에게 어떠한 마음을 가져야 할 지를 보여줍니다.토끼가 주인 아저씨에게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아니하듯이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삭을 바치듯이 우리는 우리의 주인된 하나님을 위해 충성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세상에는 자신이 진정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돈을 섬기는 사람, 명예를 섬기는 사람, 우상을 섬기는 사람....,하지만 우리는 우리를 지으신 우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진정 섬겨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확실히 알고 목숨을 바쳐 섬기는 일이야말로 가장 값진 일일 것입니다.

스물 두번째 이야기
          살아남은 이유
추운 겨울날 두 사람이 눈보라치는 벌판을 가다가 신음하고 있는 한 노인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우리 이 사람을 데려갑시다. 그냥 두면 죽고 말거요.”그러자 다른 사람이 화를 내며 “무슨 이야기입니까? 저 사람을 데려가다가는 우리마저 죽게 될거요.”라고 말하고는 먼저 가버렸습니다.첫번째 사람은 노인을 업고 걷기 시작했습니다.힘이 들어 땀이 비오듯 흘렀지만 더운 기운이 끼쳐서인지 노인은 점차 기운을 되찾기 시작했습니다.마침내 이들은 마을에 이르렀습니다.그런데 마을 입구에서 한 남자가 꽁꽁 언 채 쓰러져 죽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바로 그 사람이었습니다.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한 마음이 되고, 교만한 마음을 품지 말고, 비천한 사람들과 함께 사귀고, 스스로 지혜가 있는 체하지 마십시오.(로마서 12:15-16)

노인을 업고 그 눈오는 산길을 걸을 때는 무척 힘이 들었을 겁니다.하지만 결국 살아 남은 사람은 누구입니까?저 혼자 살겠다고 먼저 간 그 사람은 얼어 죽었지만 노인의 생명을 구하려고 업고 간 사람은 그 노인 덕분에 자신의 생명도 구할 수 있었습니다.하나님은 사람을 만드실 때 결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도록 만드셨습니다.이웃과 동행하면서, 서로의 부족한 것을 채워주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우리의 현실을 돌아보면 아직은 함께 부축하며 걸어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예수님을 믿는 우리들이 모범이 되어야 겠습니다.

스물 세번째 이야기
            티끌과 들보
어느 날 태웅이가 선생님을 찾아 왔습니다.“선생님, 아름이가 선생님께 혼날 일을 한 걸 제가 보고 왔어요. 뭐냐면요...,”“태웅아!”선생님은 태웅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말을 막으시곤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넌 지금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등을 볼 수 있지? 하지만 네 등을 한번 보렴.”태웅이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다가 “선생님 어떻게 자기가 자기 등을 볼 수 있습니까?”선생님은 태웅이를 끌어 안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그렇지? 우리들은 남의 허물은 쉽게 보면서 자신의 허물은 잘 보지 못한단다.”
어찌하여 너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마태복음 7:3)

우린 누구나 한두 번 씩은 실수를 할 때가 있습니다.그런데 자신이 잘못하면 그것은 어쩌다가 일어나는 실수가 되고, 남이 잘못하면 그것은 큰 잘못으로 여기는 것이 문제입니다.남을 탓하기 전에 나를 먼저 돌아보고, 책망을 하기전에 한 번이라도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사소한 일로 남을 헐뜯는 일은 없어질 것입니다.하지만 이 이야기가 불의를 보고도 그냥 지나치라는 이야기로 받아 들여 진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불의를 보고도 못본 척 하는 것은 상대를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도 죄악된 길로 밀어넣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주는 일입니다.고자질과 비겁을 구별할 줄 알아야겠습니다.

스물 네번째 이야기
          세상을 넓게 보는 눈
제자 두 명이 스승을 찾아 왔습니다.오랫동안 함께 공부를 한 두 제자는 이젠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되어 스승의 곁을 떠나기로 한 것입니다.스승은 두 제자 앞에 하얀 종이를 꺼내어 그 가운데 점을 하나 찍고서 제자들에게 무엇이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한 명은 점이 보인다고 대답했고, 또 다른 한 명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했습니다.
스승은 흰 종이가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떠나도록 허락했지만 점이 보인다고 대답한 제자에게는 공부를 더 할 것을 명령하며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공부란 단순한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세상을 넓게 보는 눈을 갖게하는 훈련인거야.”
하나님은 모든 것이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  (전도서 3:11)

우리가 아는 것이 무엇일까요?우린 가끔 세상을 자신만의 테두리 속에 가두어 놓고 그것만이 전부인 양 착각하기도 합니다.먼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달나라에 토끼가 살고 있다고 믿었습니다.하지만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역사 속에서 세상을 바꿔온 위인들은 한결같이 세상을 넓게 본 인물들이었습니다.편협한 생각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지만 우리의 편견이나 잘못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거스리는 일은 없어야 되겠습니다.

스물 다섯번째 이야기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어느 젊은이가 꿈에 하나님을 만나 하늘 나라로 올라갔습니다.하늘 나라를 구경하던 중 각 사람의 살아온 발자취를 그려 놓은 모래밭을 발견하고는 호기심이 생겨 살펴 보았습니다.그 젊은이의 이름이 적혀있는 모래밭에는 발자욱이 두개가 나 있었습니다.하지만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라고 생각되는 곳에는 발자욱이 하나 밖에 없었습니다.젊은이가 하나님께 따지듯이 여쭈었습니다.“하나님, 왜 제가 힘들고 어려울 때 혼자 내버려 두셨습니까?”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아들아, 난 언제나 너와 함께 있었단다. 너와 동행하다가 네게 고난이 닥쳤을 때는 내가 널 업고 다녔단다.”
나는 주 너의 하나님이다. 내가 너의 오른손을 잡고 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내가 너를 돕겠다.(이사야 41:13)

외롭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까?세상 사람 그 누구도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나 혼자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될 때가 있습니까?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시지도 버리시지도 않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깊은 산 속에 홀로 있어도, 낯선 사람들 무리에 버려져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는 우리 기독교인들만의 증거입니다.
고난이 닥쳤을 때 쉽게 좌절하고 포기해 버린다면 하나님께서 실망하실 겁니다.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고난속에서 더욱 강하게 단려되기를 원하시니까요.이 세상에 우리가 이겨낼 수 없는 고난은 없습니다.하나님께서 늘 함께 하시니까요.

스물 여섯번째 이야기
          강아지와 바위
아버지는 야솔이가 성경 읽기를 꺼려하는 것을 매우 안타깝게 여겼습니다.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는 야솔이를 데리고 바닷가로 나갔습니다.“야솔아, 앞에 가는 저 강아지를 따라 한 번 걸어보렴.”야솔이는 영문도 모른 채 강아지를 따라 걸었습니다.잠시 후 뒤를 돌아보니 모래위에 발자욱이 어지럽게 찍혀 있었습니다.“그럼 이 번에는 앞에 보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걸어보렴.”야솔이는 바위를 바라보며 걸었습니다.“어때, 이번에는 발자욱이 곧게 나있지? 네가 즐겨보는 만화책이나 텔레비전이 강아지라면 성경은 바로 저 앞의 바위와 같은 거란다.”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습니다.(디모데후서 3:15)

성경 읽기가 어렵습니까?읽어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말이 많고 너무 두꺼워 읽을 엄두가 나지 않습니까?그렇다고 하나님께서 거저 주시려는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거절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하루에 한 구절씩이라도 읽는 습관을 들이세요.어려운 구절이 나오면 목사님이나 부모님께 여쭈어 보고 함께 하나님의 말씀을 나누어보세요.하루 하루 지날 때마다 영적으로 커가고 있음을 느낄 수가 있을 겁니다.살아가면서 강아지를 따라다녀야 되겠습니까?우리는 성경이라는 믿을 수 있는 큰 바위를 바라보며 담대히 걸어가야 되겠습니다.

스물 일곱번째 이야기
                피묻은 칼
에스키모 마을에 아버지와 아들이 늑대 사냥을 나갔습니다.아버지는 날카로운 칼날에 피를 잔뜩 묻혀서 얼리더니 그 위에 또 피를 묻히기를 몇 번 반복했습니다.“아버지, 칼에 피를 묻혀서 얼리면 칼날이 뭉툭해져서 늑대를 잡기가 더 힘들어 지는 것 아닌가요?아버지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늑대는 사나워서 그냥 잡기는 힘이 들지만 이렇게 피를 묻힌 칼을 늑대가 잘 다니는 길에 꽂아두면 늑대는 처음엔 칼에 묻은 피를 먹게 되지. 그러다 보면 혀가 얼어서 감각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칼날에 자기 혀를 베어 결국엔 자기 피를 계속해서 먹다가 쓰러지는 거란다.”아들은 그 때서야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정의에 굳게 서는 사람은 생명에 이르지만, 악을 따르는 자는 죽음에 이른다. (잠언 11:19)

이야기가 조금 으시시 합니까?늑대가 자신이 죽는지도 모르고 피묻은 칼을 혀에 갖다 대듯이 우리도 죽음에 이른다는 경고를 잊고 악을 행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죄에 한 번 두 번 빠지게 되면 나중에는 자신의 행위가 죄라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게 됩니다.마치 늑대가 감각을 잃어 자신의 혀가 갈라져 흐르는 피인지도 모르고 계속 먹다가 서서히 죽어가는 것처럼.어떤일이든 시작이 어려운 것이지 한번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게 됩니다.그렇다면 생명에 이르는 길이라고 약속되어진 정의의 길로 한발짝 내딛는 결단을 내려야 되지 않겠습니까?어리석은 늑대는 되지 않아야 할테니까요.

스물 여덟번째 이야기
          여성 전사의 눈물
예전에는 여자들도 전쟁이 나면 창과 칼을 들고 싸우러 나갔습니다.
어느 전투에서 여성 전사 둘이서 서로 맞부딪쳤습니다.날카로운 창과 칼이 몇번 오가는 동안 결국 한 명이 창에 찔려 쓰러지고 말았고 이긴 여성은 기쁨의 환호를 질렀습니다.하지만 곧 그 여성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눈물까지 흘리는 것이었습니다.상대의 몸을 관통한 창이 뒤에 있던 꽃마저 찔러 그 꽃이 꺾여 버린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네 혀로 악한 말을 하지 말며, 내 입술로 거짓말을 하지 말아라. 악한 일은 피하고, 선한 일만 하여라.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
(시편 34:13-14)

사람을 죽이고는 기뻐하면서도 꺾여진 꽃을 보며 눈물을 흘리는 여성의 이야기가 조금은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사람에게는 선한 마음과 악한 마음 둘 다 존재합니다.그렇기 때문에 악을 다스리고 선을 쌓아간다면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게 됩니다.아무리 악한 사람도 그 마음 속의 선을 일깨울 수만 있다면 하나님 앞으로 나오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우리가 먼저 모범이 되어야 하겠습니다.선한 일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우리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따르려 노력할 때 하나님은 우리로 인해 기뻐하실겁니다.

스물 아홉번째 이야기
              스승의 날
스승의 날이었습니다.현석이와 은혜는 각자 어머니께서 싸 주신 과일을 선생님께 드리려고 들고 학교에 가고 있었습니다.학교 앞 골목길에서 흙장난을 하고 있던 꼬마들이 과일을 보고는 아주 먹고 싶어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고 섰습니다.그래도 현석이는 못본 척 그냥 지나갔고 은혜는 선생님께 드려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꼬마들에게 다 나눠주었습니다.현석이로부터 자초지종을 다 전해 들은 선생님은 은혜의 손을 잡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은혜야, 하나님은 가득찬 손보다는 나누어 주는 손을 더 사랑하신단다. 선생님도 은혜의 그 고운 마음씨가 너무나도 사랑스럽단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재난이 닥칠 때에 주께서 그를 구해 주신다.(시편 41:1)

현석이의 행동은 잘못이고 은혜의 행동만 옳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현석이도 나름대로 제 할일을 한 것입니다.그렇지만 선생님이 과일을 받지 못하게 되었으면서도 은혜의 행동을 칭찬하신 것은 은혜의 고운 마음씨를 보셨기 때문입니다.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도울 수 있는 고운 마음씨 말입니다.선한 일은 선한 마음에서 나옵니다.내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야말로 가장 아름다운 마음입니다.현석이가 갖지 못한 것이 바로 이 아름다운 마음인 것입니다.

서른번째 이야기
    하늘가는 길은 열려 있지않니?
교회 주일학교에서 섬으로 단체여행을 떠났습니다.아름다운 자연을 구경하고 버려진 휴지도 주웠습니다.그런데 돌아오는 배에서 일행은 폭풍우를 만났습니다.겁이 나서 우는 아이도 있고 선생님께 꼭 매달려 떨고 있는 아이도 있었습니다.“목사님! 사방이 다 폭풍에 쌓여 도저히 더 갈 곳이 없습니다. 이젠 어떡하면 좋죠?”한 아이가 울면서 목사님을 쳐다 봤습니다.“얘들아, 그래도 하늘나라로 가는 길은 이렇게 열려 있지 않니?”아이들은 눈물을 그치고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목사님은 이 말을 덧붙였습니다.“우리에게는 다른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참 소망이 있기에 어려운 일에 부딪쳐서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되는 거란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왜들 무서워하느냐? 믿음이 적은 사람들아!”하고 말씀하시고 나서, 일어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바다가 아주 잔잔해졌다.(마태복음 8:26)

폭풍우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믿음이 적은 사람들’이라고 하셨습니다.믿음이 있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담대하게 견디어 낼 수 있을 겁니다.믿음이 있는 사람과 믿음이 없는 사람의 차이는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알 수 있습니다.사방 어디를 둘러봐도 갈 곳이 없다면 하늘을 보세요.하나님께서 우리의 갈길을 보여 주실테니까요.





서른 한번째 이야기
              붕어 두마리
깊은 산속에 작은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그 연못엔 붕어 두 마리가 사이좋게 살고 있었습니다.그러던 어느날 물을 먹으로 온 여우가 큰 붕어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아니 이렇게 작은 연못에서 어떻게 같이 살고 있니? 저 작은 붕어만 없으면 이 연못은 네 것이 될텐데.”그 말을 들은 큰 붕어는 작은 붕어에게 싸움을 걸어 결국 죽이고 말았습니다.
연못을 혼자 차지하게 된 큰 붕어는 기분이 좋았습니다.하지만 곧 작은 붕어의 살이 썩어들어 가면서 물도 같이 썩기 시작했습니다.큰 붕어는 눈물을 흘리며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어 버렸습니다.얼마 안 있어 큰 붕어도 죽고 말았습니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가지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서로 물고 먹으면, 양쪽 다 멸망하고 말 것이니, 조심하십시요.(갈라디아서 5:14-15)

형제가 있는 어린이들은 가끔 싸우기도 합니다.하지만 그 싸움은 서로의 살을 뜯는 싸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이웃과도 마찬가지입니다.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분명히 경고하고 있습니다.이웃간에 사랑이 없을 때, 형제간에 우애가 없을 때, 우린 어느 한 쪽 만의 패배가 아니라 양쪽 다 멸망할 것이라고 말입니다.우리는 전 세계에서 유일한 분단국가입니다.우리의 통일도 어느 한 쪽의 패배 위의 합침이 아니라 함께 어우러져 사랑으로 만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서른 두번째 이야기
            장애인들의 친구
화창한 주일 혜미는 어릴 적부터 다리를 다쳐 휠체어에 앉아 있기만 하는 민혁이를 전도해서 교회로 향했습니다.교회 앞 계단에 선 둘은 휠체어가 들어갈 만한 길이 없어 한참을 돌아다녔습니다.결국 친구들 몇명의 도움으로 겨우 예배당에 들어 갈 수 있었지만 그것으로 다 해결된 것이 아니었습니다.주위의 어른들과 친구들이 이상한 눈으로 흘깃 흘깃 쳐다보는 바람에 민혁이는 죄 지은 사람처럼 고개를 떨구었고 혜미 역시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그 다음주부터 민혁이도 혜미도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목사님은 그 날 앉은뱅이를 고치신 예수님의 이야기로 설교를 하셨지만 믿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둘은 예수님이 더이상 장애인들의 친구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곳 사람들이 예수를 알아보고, 주위의 온 지방으로 사람을 보내어, 병자를 모두 그에게 데리고 왔다. 그들은 예수께 그 옷술이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은 모두 나았다.      (마태복음 4:35-36)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소경이나 앉은뱅이, 그리고 문둥병자들까지 거절 않으시고 고치시는 모습이 많이 나옵니다.이 천 년전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왕이나 귀족의 모습으로 오실거라고 생각했지만 예수님께서는 목수의 아들로 가난하고 병든 자들의 친구로 오셨습니다.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많은 장애인들이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손으로, 우리의 마음으로 그들을 돕기를 바라고 계십니다.장애인들은 몸이 조금 불편할 뿐 우리와 다를 것 하나 없는 한 형제 자매입니다.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특별한 배려나 도움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와 친구가 되어 주는 것입니다.민혁이와 혜미가 다시 교회에 나올 수 있도록 우리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겠습니다.

서른 세번째 이야기
        생명을 구하는 큰 일
바닷가를 거닐던 하민이는 바위 틈에서 불가사리를 떼내어 바다에 던지는 어느 할아버지를 보았습니다.호기심이 생긴 하민이가 그 할아버지에게 가까이 가서 그 일을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그건 썰물이 되어 물이 빠지면 불가사리는 움직이지 못하고 햇볕에 그만 말라죽기 때문이지.” 라고 대답하셨습니다.하민이는 웃으면서 “할아버지, 바다에는 수많은 불가사리가 있어요. 그런데 할아버지가 그렇게 힘들여 하시는 일이 무슨 큰 도움이 되겠어요?”할아버지는 금방 떼어낸 불가사리를 들어 보이시면서 “그렇지만 이 한마리의 불가사리에게는 생명을 구하는 큰일이 될 수 있지 않겠니?”라고 말씀하시곤 바다로 멀리 던져 주셨습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게 되어,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요한복음 6:38)

그렇습니다.리가 지나가다가 가끔 만나는 걸인이나 부랑자들을 도와 주는 것이 수많은 어려운 이웃들 모두를 구제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 당사자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을겁니다.물질적인 도움 뿐 아니라 예수님을 모르는 자들에게 예수님을 알리는 것 또한 우리의 할 일입니다.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이 오직 나만을 위해 쓰여서는 안될 까닭은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신 건강, 물질, 예수를 믿는 마음 이 모든 것들을 우리의 이웃과 나눌 때 하나님께서는 축복으로 채워 주실 겁니다.

서른 네번째 이야기
          나비와 지렁이
봄이 되어 환하게 핀 민들레 위로 나비가 날아왔습니다.민들레는 꽃가루를 옮겨다 주는 나비에게 감사의 말을 잊지 않았습니다.나비는 기분이 좋아져서 여기 저기 날아 다녔습니다.비 개인 어느 날 나비는 꽃밭에 나갔다가 땅 위로 나온 지렁이를 발견하고는 으시대기 시작했습니다.“난 꽃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아주 귀중한 몸이야, 그런데 넌 남에게 한 번이라도 도움이 된 적이 있기나 하니?”가만히 듣고 있던 민들레가 입을 열었습니다.“나비야, 저 지렁이는 땅 속에 구멍을 만들어서 내가 공기를 마시기 쉽게 해주고 또 양분을 만들어 주어 내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 준단다.”그 말을 들은 나비는 지렁이를 볼 낯이 없어 멀리 날아가 버렸습니다.
너는 자선을 베풀때에는, 네 오른손이 무엇을 하는지를 네 왼손이 모르게 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은밀한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복음 6:3-4)

우리는 누구나 우리의 선행에 대해 칭찬을 듣고 싶어 합니다.어떤 이들은 남에게 보이기 위해서 선행을 하고 또 그것을 알리기 위해 많은 애를 씁니다.하지만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네 상을 다 받았다.”남에게 보이기 위해 선행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상을 받았기 때문에 하늘나라에서는 받을 상이 없습니다.우리들이 선한 일을 했을 때 누군가가 보아 주지않는다고 실망하거나 그 일을 그만두는 미련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을 가만히 지켜보고 계시면서 하늘나라에서 주실 큰 상을 준비하신답니다.

서른 다섯번째 이야기
              다리
우리나라가 일본의 강제 점령 하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낙동강 줄기를 끼고 대대로 평화롭게만 살아오던 한 마을에 일본의 앞잡이 노릇을 일삼는 관리 한 명이 일본 경찰을 거느리고 강을 건너 왔습니다.관리는 마을 사람들을 마을 앞 정자에 모아 놓고 “우리는 당신들을 해치러 온 것이 아니고 단지 이 마을에 다리를 놓아 주려고 온 것이요. 그러니 다 함께 다리를 놓는데 힘을 모읍시다.”라고 말했습니다.그 때 마을의 제일 어른이신 촌장 어른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다리를 놓는 것이 우리의 편리를 위한 것이라면 돕겠지만 당신네들이 우리 마을의 양식을 뺏어가기 좋으라고 놓는 다리라는 걸 아는 한 우린 아무런 도움도 줄 수가 없다네.”
너는 악한 사람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말아라. 그들의 마음은 폭력을 꾀하고, 그들의 입술은 남을 해칠 말만 하기 때문이다.(잠언 24:1-2)

뒷 이야기를 들려 드릴까요?마을 사람들은 나라를 되찾은 후 서로 서로 힘을 모아 멋지고 튼튼한 다리를 만들어 아주 편리하게 이용했다고 합니다.그 때까지 뗏목으로 그 강을 건넌 마을 사람 중에 그 누구도 다리가 일찍 놓이지 않은 것에 대해 불평을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세상에는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게 악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습니다.악한 사람들은 종종 선한 사람들을 이용하기도 합니다.
지금 당장의 작은 이익 때문에 나쁜 일을 보고도 못 본 척 하거나 그 일을 도와주는 일이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서른 여섯번째 이야기
              면접시험
어느 청년이 회사에 취직하기 위하여 면접시험을 보러 왔습니다.자기 소개를 한 번 해보라는 면접관의 이야기에 그 청년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저의 아버지는 시청에서 일하는 고위 공무원이고, 삼촌은 변호사십니다. 그리고 저의 할아버지는 예전에 군데에서 장군이셨구요. 그리고...,”“잠깐만요.” 면접관은 그 청년의 말을 막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우리가 알고 싶은건 지금 당신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 거지, 당신의 부모나 친척이 어떤 사람인가 하는게 아니라구요. 당신이 하지 않은 일은 당신을 뽑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을 것이다. (요한복음 3:16)


예수님을 믿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내 아버지가 목사님이고, 내 형제들이 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해도 내가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는 없는 겁니다.반대로 우리 가족 중에 나 혼자만이라도 함께 구원받을 수 있을거라는 생각도 잘못입니다.언젠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펼쳐질 때 내 부모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이 그 나라에서 함께 살지 못하고 지옥에 가게 된다면 우리의 마음은 무척 아플 겁니다.지금이라도 당장 내 주위에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을 전도하세요.더 늦기전에...,

서른 일곱번째 이야기
              해와 달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 해와 달이 만났습니다.해는 일을 마치고 쉬러 가는 길이었고, 달은 밤길을 밝히기 위해 일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해는 그런 달을 비웃으며 “야, 너는 나처럼 밝은 빛을 내지도 못하면서 사람들에게 무슨 도움이 된다고 매일 저녁 일하러 가는거니?”달은 무척 상심하여 더 이상 밤에 나가지 않았습니다.그러자 사람들은 밤이 되면 무서워서 밖에 나가지 못했고, 밤 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오던 아저씨는 돌부리에 채어 넘어지기도 했습니다.날이 어두워지면 사람들은 더 이상 노래를 부르거나 시를 짓지 않았습니다.그 때서야 해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달에게 사과하러 갔습니다.
그의 주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잘했다! 네가 적은 일에 신실하였으니, 이제 내가 많은 일을 네게 맡기겠다. 와서, 주인과 함께 기쁨을 누려라. (마태복음 25:21)

해는 무척 밝지만 무조건 밝기만 하다고 좋은 것은 아닙니다.사람들이 잠을 자야 하는 밤에는 밝은 해가 오히려 방해가 될 뿐입니다.그리고 밤 늦게 귀가하는 아저씨에게는 은은한 달빛이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습니다.이렇듯 하나님께서는 사람마다 각기 다른 달란트를 주셔서 서로 도우며 살도록 하셨습니다.자기만 잘났다고 자랑하는 것도 나쁘지만 ‘난 아무것도 못하는 가봐’라며 실망하는 일도 있어서는 안되겠습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능력을 개발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도 인정해 주며 서로 서로 도우며 사는 것이 하나님께서 바라는 것입니다.

서른 여덟번째 이야기
          노동자와 강아지
하늘나라 천사 둘이서 세상에 내려왔는데 한 천사는 가난한 노동자의 모습으로 또 한 천사는 부자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의 모습으로 변했습니다.몇해 후 하늘나라에서 다시 만난 두 천사는 서로의 경험을 털어 놓았습니다.“저 세상은 참으로 살 곳이 못되는 곳이야. 하루 종일 일을 해도 잘 사는 몇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들 힘들고 어렵게 살수 밖에 없었거든.“이 말을 듣고 있던 두번째 천사는 이상하다는 듯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이상하다. 난 강아지의 모습이었는데도 사람들은 내게 고급 음식을 아끼지 않고 늘 보살펴 주던데...,”“사람들은 어리석게도 자기와 어우러져 살아야 할 이웃이 누구인지를 잘 모르는것 같아.”
첫번 째 천사의 탄식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게 하십시오. 이 평화를 누리게 하시려고, 여러분을 한 몸으로 부르신 것입니다.(골로세서 3:15)

요즘 각 가정에서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외아들이나 외동딸인 경우 외로울까봐 일부러 그런 애완동물을 키우는가 봅니다.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리면 우리 주위에는 생각 외로 어렵고 외로운 이웃들이 많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으실 때 서로 도우며 사라의 띠로 하나가 되기를 바라셨습니다.애완동물을 키우는 것이 나쁘다는 뜻은 아닙니다.진정 우리의 사랑을 필요로 하는 우리의 이웃들을 향해 최소한 애완동물에게 기울이는 관심의 이상으로 사랑을 나누어야겠기에 하는 이야기입니다.

서른 아홉번째 이야기
          짐의 무게 덕분에
보부상 두명이 함께 고갯길을 넘게 되었습니다.짐은 무겁고 길은 험하여 힘이 들자 한 명이 털썩 주저 앉으며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난 더이상 못 가겠으니 당신 혼자 먼저 가시오. 난 여기서 좀 쉬었다 갈테니.”“이 근처에는 쉴 만한 곳도 없고 점점 날도 저물어 가니 정 힘이 들면 그 짐을 내게 주시오. 그리고 어서 갑시다.”그 이야기를 들은 보부상은 슬며시 짐을 넘겨주고 모른 척 걷기 시작했습니다.얼마 안가서 두 명은 개울을 건너가게 되었는데 물살이 대단히 빨랐습니다.짐을 다 건네준 보부상은 빠른 물살에 떠밀려 넘어졌지만 짐을 지고 있던 보부상은 짐의 무게덕분에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과 같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받는 위로도 우리에게 넘칩니다.(고린도후서 1:5)

고갯길을 넘을 때는 무거운 짐이 힘들게 여겨지겠지만 물살이 심한 개울에서는 그 짐이 눌러주는 힘으로 그 물살을 이겨낼 수가 있습니다.우리의 생활 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우리는 해야 할 여러가지 일들 중에서 쉬운 일만 하려고 하고 어려운 일은 하지 않거나 다른 사람에게 미루려는 경향이 있습니다.하지만 힘들고 어렵게 여겨지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을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여러가지 유익함이 있을 수 있습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때로는 고난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도 함께 주십니다.우리가 그 고난에 당당히 맞서 이겨낼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잘했다”는 칭찬과 위로를 해 주실겁니다.

마흔번째 이야기
          내 집앞도 아닌데
밤사이 눈이 곱게 내렸습니다.원구는 아침에 일어나서 비를 들고 집 앞의 눈을 말끔히 쓸었지만 옆집 아란이네 집에는 아무도 눈을 쓸지않아 길가는 사람들이 매우 불편을 겪었습니다.원구는 ‘내 집앞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며 그냥 집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잠시 후 볼일이 있다며 옆집에 가셨던 어머니께서 다리를 절룩거리며 들어오셨습니다.“엄마, 어쩌다가 다리를 다치셨어요?” 원구가 놀라서 묻자 어머니는 “응, 아란이네 집에 김치를 갖다 주러 갔다가 대문 앞 눈길에 미끄러져 넘어졌단다. 네가 다른 사람들이 다치지 않게 그 눈좀 치워 주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의 손에 선을 행할 힘이 있거든, 도움을 청하는 사람에게 주저하지 말고 선을 행하여라(잠언 3:27)

만일 원구가 아란이네 집 앞 눈까지 미리 치웠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요?어머니는 다치지 않았을테고, 어쩌면 아란이네 집에서 고맙다는 말까지 들었을지도 모릅니다.물론 칭찬을 듣기위해 선한 일을 한다는 것은 우스운 일이지만요.눈을 치우는 일뿐만 아니라 다른 일에서도 내가 조금 더 수고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리는 주저말고 그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남을 도울 수 있는 것도 축복입니다.우리가 만일 몸을 심하게 다쳐서 걷지도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겠습니까?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우리의 힘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야 할 것입니다.설령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다 할 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보고 계시니까요.





마흔 한번째 이야기
    사자가 만일 배가 고프다면
사자와 여우가 함께 들어왔습니다.종업원이 옆에 오자 여우는 식사 하나를 주문했습니다.이상하게 여긴 종업원은 “아니, 사자는 식사를 하지 않을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그러자 여우는 당연하다는 듯이 “만일 사자가 배가 고프다면 내가 지금 같이 앉아 있을 수 있겠소? 벌써 사자의 밥이 되었지.”라고 대답했습니다.
“네게는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네가 가진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화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누가복음 18:22)

연말에 거리를 나가 보면 구세군 남비를 가끔 보게 됩니다.그럴 때면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됩니까?“지금 내가 가진 것도 별로 없는데 남을 어떻게 도와 주겠어.”라는 마음으로 그냥 못본 척 하지는 않았던가요?
내가 풍족할 때 다른 사람을 돕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는 평생 아무도 도와 주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사람의 욕심이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그 곳에 그 어떠한 것을 채워 넣어도 우리들은 만족하지 못합니다.“내가 조금 아끼면 어려운 이웃들을 도울 수 있을거야.”라는 마음으로 정성껏 돕는다면 그들도 이 추운 겨울을 조금은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겁니다.배가 부르기 때문에 여우를 살려 두는 탐욕스러운 사자는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마흔 두번째 이야기
            내가 직접
민규는 친구들과 함께 산에 놀러 갔다가 길을 잃었습니다.그 산은 처음 가 보는 산인데다가 친구 중 그 누구도 길을 잘 아는 사람이 없어 헤매다 보니 날이 점점 어두워 왔습니다.한참을 헤맨 끝에 자그마한 산장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그 산장엔 턱수염이 하얀 할아버지 한 분이 계셨습니다.“할아버지, 저희가 길을 잃어서 그러는데요, 산 아래로 가려면 어디로 가면 되죠?” 민규가 물었습니다.하지만 할아버지는 “너의 힘만으로는 이 산을 내려 갈 수가 없어, 이 산은 키 높은 나무가 많을 뿐 아니라 길도 험하여 너희들에게는 지도가 있다 하더라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아.”민규와 친구들은 근심스런 표정을 지었습니다.“하지만 내일 아침 날이 밝으면 내가 직접 마을로 데려가 주지, 나와 같이 간다면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거야.”민규와 친구들은 그날 밤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으니, 두려워 하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아라. 내가 너를 강하게 하겠다. 내가 너를 도와주고, 내 승리의 오른팔로 너를 붙들어 주겠다.(이사야서 41:10)

산을 내려오는데는 그 산에서 평생을 산 그 할아버지와 동행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돌봐 주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며 따르는 것보다 더 좋은 삶의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살다가는 나만 바보 소리 들을 텐데?’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때로는 손해도 보고 바보라는 소리를 들을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자에게 하늘나라의 상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그것보다 더 확실한 삶의 길은 없습니다.

마흔 세번째 이야기
        말 한마디 없는 역할
성탄절을 맞아 주일학교에서 성극을 하기로 했는데효민이는 기분이 좋지 않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다 좋은 배역을 맡은 것 같은데 자기만 말도 한마디 없는 역할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효민이는 연습할 때도 기운이 없었지만 정작 발표회하는 날에는 교회에도 가지 않았고 성극은 엉망이 되었습니다. 선생님께서 효민이를 불렀습니다. “효민아, 예수님께서 태어나시던 날, 별 하나가 동방박사 세 사람을 예수님께로 안내 했었지. 만일 그 별이 없었다면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을거야. 하지만 그 별은 자신의 이름 하나 남기지 않고 사라져 버렸지.”
고개를 푹 숙인 효민이에게 선생님은 한마디를 덧 붙였습니다. “하지만 그 별의 이야기는 성경속에서 영원히 살아 있단다.”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모소한다.(마태복음 6:1)

교향악단 단원을 모집할 때 가장 구하기 힘든 사람은 제2 바이올린 연주자라고 합니다.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자리는 그 만큼 사람들이 차지하지 않으려고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떠한 일을 할 때 그 일을 해야 할지, 하지 말아야 할지 하는 기준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지 아닌지가 되어야지,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는 일인지 아닌지가 되어서는 안되겠습니다.이 땅에서의 상은 하늘나라에서는 별 소용이 없습니다.오히려 하늘나라에서 상을 못 받는 이유가 된다고 성경에 씌여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역할이 무엇이든지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우린 그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마흔 네번째 이야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못
덜컹 “아야” 트력이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짐칸에 실려가던 못은 혼자 땅에 떨어져 버렸습니다. 못의 고향은 강원도 아주 깊은 산골 바위산 밑이었습니다.어느 날 광부 아저씨의 손에 의해 세상으로 나와 여러 곳의 공장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아앙, 난 여기서 그냥 아무런 소용도 없이 버려 지긴 싫단 말야. 앙앙” 못은 무척 슬펐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땅에 떨어진 못에 관심을 두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청소부 아저씨가 청소를 하다가 그 못을 발견하고는 주머니에 주워 넣었습니다. 며칠 뒤 못은 자기가 그 청소부 아저씨의 방안에서  가족사진이 든 액자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못은 더 이상 슬프지 않았습니다. 아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못이라고 생각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따라 참된 의로움과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십시오.(에베소서 4:24)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실 때 그 어느것 하나도 함부로 만드시지 않으셨습니다. 그것은 곧 모든 것이 다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함께 살아 가게끔 하셨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길가에 떨어진 못 하나라도 이처럼 참된 주인을 만나게 될 때 그 쓰임이 생기고 존재의 의미와 가치를 부여받게 되는 것입니다.사람의 경우 더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모르고 살 때는 버려진 못과 같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이지 만 우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아는 그 순간 우리의 삶은 달라지고 우리는 새로운 생명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고 그 분을 위해 쓰임받기 위해 자신을 다듬어 가십시요.언젠가 크게 들어 쓰실 겁니다.

마흔 다섯번째 이야기
          평소와 다름없이
여행객을 태운 배가 폭풍을 만나 항해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부서지고 길을 잃어 바다에서 표류하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 절망에 빠져 아무 일도 않고 육지가 나타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 한 소년은 평소와 다름없이 세수를 하고 운동도 하고 빨래도 해서 갑판에 널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소년을 어리석다고 비웃으며 잠을 자거나 술을 마셨습니다. 열흘이 지나고 또다시 보름이 지났습니다. “육지다” 누군가가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기쁨의 탄성을 질렀지만 스스로 육지에 내릴 수 있었던 사람은 그 소년 한명 뿐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병에 걸리거나 움직일 힘도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소년은 깨끗한 옷을 입고 있었고 건강한 모습이어서 곧 이전의 자기 생활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품격을 낳고, 품격은 희망을 낳는  줄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3-4)

얼마 전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학교도 직장도 다 그만두고 오직 그들의 모임장소에서 예 수님의 재림만을 기다린다고 해서 뭇사람들의 웃음  거리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만일 예수님께서 내일 오신다고 해도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우리의 삶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고난 중에도 마찬가지 입니다.예수님은 우리에게 환난 중에서 희망을 찾아내기를 원하시는 것이지 그 환난으로 인해 실족하기를 원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 언제나 충실할 수 있다면 그것은 환난중에 희망을 찾는 가장 빠른 길입니다.

마흔 여섯번째 이야기
            요술 항아리
형제가 산에서 나무를 하다가 숲속에 버려진 항아리 두 개를 발견했습니다.그 항아리에는 쌀이 절반 정도 들어 있었습니다.형제는 각자 하나씩 집으로 가져갔습니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항아리에서 쌀을 꺼내서 밥을 해 먹어도 쌀이 줄어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동생은 그 쌀을 펴서 이웃들과 나눠 먹으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반면에 항아리를 집으로 가져간 형은 반 밖에 차지 않은 그 항아리가 불만이어서 그 항아리를 채우기로 했습니다.하지만 아무리 쌀을 부어 넣어도 항아리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결국 화가난 형은 항아리를 깨버리고 말았습니다.
남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너희에게 주 실 것이니, 되를 누르고 흔들어서, 넘치도록 후하 게 되어, 너희 품에 안겨 주실 것이다.
(누가복음 6:38)

똑같은 항아리를 가지고도 동생은 자기 필요한 만큼 쓰고 이웃과도 쌀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형은 더 가지려는 욕심때문에 자기가 가진 것마저 잃게 되었습니다.하나님은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항아리를 하나씩 다 주셨습니다.그것을 이웃과 나누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그 항아리를 다시 채워 주시지만, 자기 자신만의 욕심을 채우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주셨던 것마저 가져가신답니다.세상에는 아직도 굶주리며 어려운 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우리의 가진 것을 그들과 나눌 때 세상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입니다.

마흔 일곱번째 이야기
            개미와 베짱이
개미와 베짱이는 서로 열심히 일하며 사이좋게 살 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개미가 베짱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베짱아, 너는 노래를 잘하니 난 농사를 짓고 넌  우리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떻겠니? 물론  추수한 곡식은 나누어 먹고.”베짱이는 곰곰히 생각하다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개미야, 생각은 정말 고마워, 하지만 곧 겨울이  되고 먹을 곡식이 줄어 들면 그 때도 너의 곡식을  함께 나눌 수 있을지 의문이구나.”말을 마친 베짱이는 다시 허리를 굽히고 농사일을 계속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명하여, 또 권합니다. 조용히 일해서, 자기가 먹을 것을 벌어서 먹도록 하십시오.(데살로니가후서 3:12)

국어책에 나오는 개미와 베짱이의 변형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겁니다.
그 이야기 속의 베짱이는 여름 내내 노래만 부르다가 겨울에 먹을 것을 구하러 개미집에 갔으나 쫒겨나  결국 굶어 죽었습니다.음식은 곧 생명입니다. TV가 없어도 살고, 좋은 침대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음식이 없으면 단 하루도 견디기 힘듭니다. 요즈음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여러가지 사정으로 더 이상 농사를 짓지 않습니다. 논과 밭에는 공장과 호텔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농사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정신을 차린 베짱이처럼 우리도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마흔 여덟번째 이야기
          친구들을 통해서
어느 마을에 아버지와 딸이 살고 있었습니다.어느 날 한 청년이 편지로 구혼을 해왔습니다. 그 처녀의 아버지는 며칠 뒤 확답을 주겠다고 말하고는 그 쳥년을 만나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약속한 날짜가 되어서 아버지는 그 청년에게 거부의 뜻을 전했습니다. 그 청년은 화가 나서 처녀의 아버지를 만나서 이렇게 따졌습니다. “아니 도데체 당사자인 나를 만나지도 않고 무엇때문에 안된다는 것입니까?”“난 며칠동안 자네의 친구들을 만나보았지. 그 친 구들은 하나같이 불량하거나 하나님을 알고 있지  못했어. 난 자네의 친구들을 통해서 이미 자네를  충분히 보았기 때문에 거절한 것이네.”
다윗이 사울과 이야기를 끝냈다. 그뒤에 요나단은 다윗에게 마음이 끌려, 마치 제 목숨을 아끼듯, 다윗을 아끼는 마음이 생겼다.(사무엘상 18:1)

친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동화는 참으로 많습니다.그것은 참된 친구를 사귄다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 도 지나침이 없기 때문입니다.옛 성현은 일생동안 참된 친구 세명을 사귈 수 있 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는 죄를 짓도록 부추기는 친구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자라면서 그 어느것 보다도 친구에게서 많 은 영향을 받습니다.친구를 통해 그 사람을 보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 유에서 입니다. 좋은 친구를 많이 사귀세요.참되고 신실한 친구를, 서로 사랑으로 하나될 수  있는 친구를 말입니다.

마흔 아홉번째 이야기
                  연
추운 겨울입니다 할아버지는 지훈이에게 네모난 방패연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지훈이는 연 날리러 갈 생각은 않고 방안에서 TV만 보고 있었습니다. “왜, 연 날리러 가는 것이 싫으냐?”할아버지께서 물어 보셨습니다. “아니예요 할아버지, 연날리는 것이 좋긴 하지만 지금 밖에는 바람이 불어 춥거든요, 좀 따뜻해지면 날리려구요.”지훈이의 대답에 할아버지는 “연이란 바람이 심하게 불수록 더 높이 올라가는 거란다. 바람이 불지 않 으면 연은 날지 않거든.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훈이는 곧 연을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연은 아주 높이 높이 날았습니다.
또한 여러분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이 주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 는 사람이 되었습니다.(데살로니가전서 1:6)

연은 바람이 세게 불수록 높이 올라가고 팽이는 때릴수록 빨리 돕니다
우리의 삶도 고난 속에서 더 강하고 굳건해지는 것 입니다. 우리가 여행을 갈 때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목적지 까지 간다면 우리는 어떠한 기억도 재미도 없을 겁니다. 예방주사를 놓는 것도 큰 병이 생기기 전에 면역성을 갖도록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끔 우리에게 작은 고난을 겪게 하 셔서 닥쳐올 큰 고난까지 이길 힘을 주시기도 합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고난이 있으면 그것을 하나님 께서 우리에게 관심을 갖고 있다는 표시로 알고 굳 건히 이겨내야 되겠습니다.

쉰번째 이야기
          한되의 밀
한 나라의 임금님에게 왕자가 셋 있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은 세 명의 왕자들을 불러서 밀가루  한 되씩을 주며 그것으로 병사 백 명을 먹이라고 했습니다. 얼마가 지난 후 임금님은 다시 왕자들을 불러 결과 를 물었습니다.첫째 왕자는 밀의 양이 너무 적어서 병사 다섯도  채 먹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둘째 왕자는 밀을 모두 밭에 심었기 때문에 그것이 결실을 거두면 그 때 병사들을 먹일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셋째 왕자는 한 되의 밀로 빵을 만들어 그것을 시  장에 내어 팔았기 때문에 그 이익으로 병사 백 명 을 먹이고도 남았다고 말했습니다.임금님은 둘째 왕자와 셋째 왕자에게는 큰 상을 내렸지만 첫째 왕자에게는 한 달 동안 왕궁을 청소하는 벌을 내렸습니다.
너는 흙에서 나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 때까지, 너는 얼굴에 땀을 흘려야, 낟알을 먹을 수 있을 것이다. (창세기 3:19)

왜 임금님은 첫째 왕자에게 하필이면 왕궁을 청소 하는 벌을 내렸을까요?그것은 첫째 왕자는 땀 흘리는 수고를 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입니다.둘째, 셋째 왕자는 임금님의 뜻을 알고 약간의 밀 에 수고를 더하여 백명이 먹고도 남을 분량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이 스스로 수고하여 먹을 것을 얻도 록 명하셨습니다. 씨를 뿌려서 농사를 짓거나 빵을 만들어서 파는 이 모든 일들은 우리의 수고가 있어야 합니다. 수고하지 않는 자는 결코 배부를 수 없으며, 땀 흘리지 않고 남의 것을 얻고자 하는 사람을 우리는 도둑이라 부릅니다.오늘날 오병이어의 기적은 오로지 우리의 땀과 노력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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